2009년 07월 02일
702 이야기 잡상
망상적이고 근본적인 판타지를 총족시키는 이야기가 가장 첫번째 레벨의 이야기. 한국의 저열한 레벨의 사극이나 (선악 구도 같은것) 혹은 좋은 무협지, 양판소, 트렌드 드라마나 막장 드라마가 같은 것들이 이 레벨. 사람이 원하는 것을 가장 직설적으로 파고든다.
여기에 크리틱이나 '니가 그래봐야 세상은 원래 흘러가던데로 흘러간다' 라는 메시지를 포함간 것들이 다음 레벨의 이야기. There is no happy ending. 모든 인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계속 첫번째 레벨의 망상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이 두번째 레벨의 이야기는 좀 더 테크니컬한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자신이 알고 있던 당연한 사실들을 좀 더 극적이고 교훈적인 것으로 채색해서 보여준다.
두번째 레벨의 이야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일단 장르의 문법을 어느정도 숙지한 상태여야 한다. 그리고 뭐 첫번째 레벨의 이야기에 좀 질려있어야 겠다.
시대와 사회가 이야기를 결정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문제. 어쨌거나 우리가 TV로 접하는 모든 영상매체는 기본적으로 광고수익을 베이스로 해서 기획된다. 광고가 시대의 욕망을 픽업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맥락으로, 드라마와 기타등등도 그렇다.
그랜토리노가 50년전에 나올 수 있었을까? 다크나이트나.. 하루히는 어떨까? 그것들은 예민한 더듬이로 욕망과 자본간의 실제적 관계를 밝혀낸다. 많은 작품들이 실패하지만 어떤 것들은, 성공한다. 이 경우 성공했다는 것은 정말 많은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욕망의 코드들은 단순히 배금주의로 통틀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뭐 많은 경우 설명이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인간은 위선을 떠는 것을 좋아하고, 그 위선이 자신에게 이익을 준다면 더 좋아한다.
왜 인간은 자기희생이나 헌신, 죽음에도 그치지 않는 가치 ..를 다룬 이야기 같은 것들에 열광할까? 이것들은 '자신이' 했다면 결코 열광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현실의 세계관을 일시적으로나마 왜곡해서 볼 수 있는데서 기인한다. 그 순간만은 세상은 좀 더 아름답고 인간은 좀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모든 것들이 '나보다 더 괴로운 인간을 보는데' 에서 발생한다. It's so cool!
그리고, 그 반대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물을 만드는 것이 현실에는 훨씬 더 가까울 거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 하는 사람들이 '그런' 작품들을 만들고 어떤 사람들은 또 그런 '고통'을 돈을 내고 관람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좋은일' 을 했다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자위를 한다. 만일 그 둘의 나쁨도를 수치로 비교 할 수 있다고 하면 둘 중 어느쪽이 더 나쁠까?
이 모든 모럴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이야기' 에는 정말 순수한 어떤 궁극적인 즐거움이 존재한다. 아마 인간의 시상하부에는 이야기 쾌감중추같은 것이 틀림없이 존재할 거다. 이야기의 구조나 차례를 비트는 것도 즐겁고 이야기의 순도를 높여도 즐겁다. 단지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것도, 순수한 상상도, 메타포도, 메타포들로 또다른 세계관을 만들어 내는 것도 그밖의 다양한 모든것들이 인간에게 쾌감을 준다.
남아있는 최고(最古)의 문자로 쓰여진 길가메시의 이야기는 어떤가? 복잡하고 유려하고 수많은 상징들로 범벅이 되어 있고 그리고 '재미있다' 이것은 누군가가 한번에 지어낸 그런 이야기가 아닐 거다. 수많은 인간이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그중에 재미있는 것들이 살아남아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로 무수히 파생된다. 그리고 그 파편들이 재구성되어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를 만든다. 이와같은 이야기의 구성과정은 지금도 하나도 변함이 없다.
여기에 크리틱이나 '니가 그래봐야 세상은 원래 흘러가던데로 흘러간다' 라는 메시지를 포함간 것들이 다음 레벨의 이야기. There is no happy ending. 모든 인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계속 첫번째 레벨의 망상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이 두번째 레벨의 이야기는 좀 더 테크니컬한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자신이 알고 있던 당연한 사실들을 좀 더 극적이고 교훈적인 것으로 채색해서 보여준다.
두번째 레벨의 이야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일단 장르의 문법을 어느정도 숙지한 상태여야 한다. 그리고 뭐 첫번째 레벨의 이야기에 좀 질려있어야 겠다.
시대와 사회가 이야기를 결정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문제. 어쨌거나 우리가 TV로 접하는 모든 영상매체는 기본적으로 광고수익을 베이스로 해서 기획된다. 광고가 시대의 욕망을 픽업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맥락으로, 드라마와 기타등등도 그렇다.
그랜토리노가 50년전에 나올 수 있었을까? 다크나이트나.. 하루히는 어떨까? 그것들은 예민한 더듬이로 욕망과 자본간의 실제적 관계를 밝혀낸다. 많은 작품들이 실패하지만 어떤 것들은, 성공한다. 이 경우 성공했다는 것은 정말 많은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욕망의 코드들은 단순히 배금주의로 통틀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뭐 많은 경우 설명이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인간은 위선을 떠는 것을 좋아하고, 그 위선이 자신에게 이익을 준다면 더 좋아한다.
왜 인간은 자기희생이나 헌신, 죽음에도 그치지 않는 가치 ..를 다룬 이야기 같은 것들에 열광할까? 이것들은 '자신이' 했다면 결코 열광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현실의 세계관을 일시적으로나마 왜곡해서 볼 수 있는데서 기인한다. 그 순간만은 세상은 좀 더 아름답고 인간은 좀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모든 것들이 '나보다 더 괴로운 인간을 보는데' 에서 발생한다. It's so cool!
그리고, 그 반대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물을 만드는 것이 현실에는 훨씬 더 가까울 거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 하는 사람들이 '그런' 작품들을 만들고 어떤 사람들은 또 그런 '고통'을 돈을 내고 관람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좋은일' 을 했다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자위를 한다. 만일 그 둘의 나쁨도를 수치로 비교 할 수 있다고 하면 둘 중 어느쪽이 더 나쁠까?
이 모든 모럴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이야기' 에는 정말 순수한 어떤 궁극적인 즐거움이 존재한다. 아마 인간의 시상하부에는 이야기 쾌감중추같은 것이 틀림없이 존재할 거다. 이야기의 구조나 차례를 비트는 것도 즐겁고 이야기의 순도를 높여도 즐겁다. 단지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것도, 순수한 상상도, 메타포도, 메타포들로 또다른 세계관을 만들어 내는 것도 그밖의 다양한 모든것들이 인간에게 쾌감을 준다.
남아있는 최고(最古)의 문자로 쓰여진 길가메시의 이야기는 어떤가? 복잡하고 유려하고 수많은 상징들로 범벅이 되어 있고 그리고 '재미있다' 이것은 누군가가 한번에 지어낸 그런 이야기가 아닐 거다. 수많은 인간이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그중에 재미있는 것들이 살아남아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로 무수히 파생된다. 그리고 그 파편들이 재구성되어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를 만든다. 이와같은 이야기의 구성과정은 지금도 하나도 변함이 없다.
# by | 2009/07/02 05:41 | 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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